‘사랑’
이 감정은 인간이 가진 모든 감정중에서 가장 비이성적이고 혼란스러운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여러분은 운명적인 사랑 이라는걸 믿으시나요?
아마 많은 분들께서 한번쯤은 꿈꾸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요.
이 문장은 듣기만 해도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의 한장면이 머릿속에서 쫙 펼쳐지죠.
그래서 옛날부터 사랑은 신이 점지해주는거라 생각해왔죠.
사람의 노력으로 성취되는게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작용하는거다, 라는겁니다.
그렇다 보니 서양에서는 술에 취한 신이 하트 화살을 쁌쁌하다가 보면
‘어맛 저 남자…!’ ‘우왓 저 여자…!’
하는 이야기를 자주 볼 수 있는데요.
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설화로 전해져내려오고 있습니다.
바로, 운명의 붉은 실과 월하노인 이야기입니다.
위고는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얼른 아내를 맞이하고자 애썼으나 아직까지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 중매를 서준다는 사람이 있으니 마음이 급해져 아침 일찍 급히 길을 나섰죠.
아직 해가 밝지 않아 달이 휘영청한데 한 노인이 망태기에 기대어 앉아 달빛에 의지해 글을 읽는게 아니겠나요.
그런데 그 노인이 들고 있는 책에는 처음보는 글자가 적혀있었습니다.
“노인장이 보는 글은 처음보는데 뭡니까?”
라고 위고가 묻자, 노인은 웃으며
“이건 인간 세상의 글이 아닌데 그대가 보았군요”
라고 답했습니다.
풍이 심하게 든 노인인가 걱정되었지만 한번 더 물어보자
이번에는,
“저승의 글입니다”
라고 노인은 말했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당장 눈앞의 중매보다
이 풍이 든거같은 노인이 걱정되어
위고는 말을 좀 섞기로 마음먹었죠.
“그럼 당신은 뭐하시는 분입니까?”
“세상 사람들의 혼인을 돌보시죠.”
“전 10년이나 혼담을 넣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중매를 보기로 했는데 잘 되겠습니까?”
“안될거같소… 당신 아내는 이제야 겨우 세살이오. 17살이 되면 그때 시집올것인데...”
위고는 허탈하여 그냥 이 중늙은이를 무시하고 갈까 하다가 망태기 안에는 뭐가 들었는지 물었습니다.
“부부의 발에 묶는 빨간 새끼줄이라오.
아무리 원수 지간이든,
귀천을 따지지 않고 멀리 떨어져있어도 벗어날 수 없소.
그대 다리도 이미 상대와 묶여있다오.”
예비 부인이 세살이라는거도 화가 나는데 나물파는 할멈 딸이라니!
이게 뭔 막말인가!
예로부터 허름한 마차가 가면 삼각별 마차가 온다 그랬는데,
10년이나 중매를 봤는데 왜 허름한게 와...?
그럴순없지!
그 얘기를 듣고 위고는 초라한 행색의 아이를
하인을 시켜 죽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위고가 하인에게 잘 찔렀냐고 묻자,
그는 심장은 찌르지 못했지만 미간을 찔렀다고 말했죠.
이 말을 들은 위고는 아이가 죽었을거라고 믿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14년 후.
위고는 아직도 결혼을 못했습니다.
분명히 그 중늙은이의 저주 때문일거라 굳게 믿었죠.
아버지의 음복으로 상주의 군이 되었지만 뭐에 쓰겠나요.
결국 일이나 열심히 한 위고,
상주의 자사는 그런 위고가 기특해서 자기 딸을 아내로 삼게 했습니다.
대략 열여섯 열일곱쯤 되는 아가씨였는데 참한게 이루어 말할 수 없었죠.
그런데 그녀는 항상 미간에 꽃장식을 붙이고 다녔기에
위고는 의아한 마음에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울면서 답하길,
“소첩은 군수의 조카지, 사실 딸이 아닙니다.
선친께서 돌아가시고 유모와 객점 근처에서 채소를 팔았는데
어떤 미친놈이 칼을 찔러서 그 자국을 가리려고 붙여놓은겁니다”
세상에 이런일이...!
그 말을 들은 위고는 당시의 일을 털어놓고
이후 서로를 아끼며 평생 잘 살았다고 합니다.
결국, 월하노인의 예언대로 위고는 그 아이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나이가 적어도 20살 이상은 많은데다가
칼까지 찌른놈이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
라는 결말을 보고
‘이게 뭔 개 소리야...?’ 싶으실 수도 있겠지만…
네, 뭐 옛날 당나라 때 이야기가 다 그렇죠.
설화 속 주인공인 위고는 10년을 중매를 보고
그 뒤에 또 14년이 지났으니
총 24년이나 결혼도 못하고 노총각으로 살았던건데요.
요즘에야 백세시대에 30대에 결혼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라지만,
이 당시를 생각해보면 아주 끔찍할 정도로
오랫동안이나 결혼을 못했던 거죠.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일화로 부부의 연이 되는 남녀는
빨간밧줄로 발목이 연결되어 있고,
사랑하게 될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 설화는 중국 당나라 시대의 이복언이 지은
'속현괴록'에 등장하는 '월하노인' 이야기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인데요.
북인도에서 실크로드를 경유하며 퍼진 이 이야기는 한국,
그리고 일본에서는 다르게 전파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청실홍실로,
일본에서는 아카이이토,
즉, 붉은 실이라는 다른 설화로 퍼지게 되었죠.
다만,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새끼손가락에 이어진 붉은 실 이미지의 원류는
일본으로 보는게 맞는데요.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이미 잊혀져 가고 있지만,
한국의 <선녀와 나무꾼>처럼 일본에서는
대중적인 옛날 이야기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이 붉은 실은 미디어에서도 정말 많이 등장했는데요.
<신사의 품격>,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연애시대>,
그리고 최근의 <간떨어지는 동거>까지
이외에도 정말 많은 작품에서 운명적인 사랑의 매개체로 활용했죠.
조금 차이는 있지만 <호텔 델루나>에서도 어느정도 차용한 에피소드가 나오기도 했구요.
아무래도 ‘운명’이라는걸 화면으로 표현하기에 적합한 소재이기 때문…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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