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에게 영혼을 판 바이올리니스트가 실존한다?
이 세상에는 작곡가 자신들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곡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흔히 신들려 썼다고 하죠.
서양권에서는 이런걸 두고 ‘악마가 만든 곡’ 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쪽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얘기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 수 있죠.
작곡가 본인도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현재는 세계 3대 협주곡 중에서도 극악의 난이도로 유명한데요.
이에 못지 않게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도 못지 않은 비슷한 이유의 유명세를 갖고 있는 곡입니다.
과연 이 곡을 작곡한 바이올리니스트, 타르티니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모든 연주자는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기교와 테크닉을 갈고 닦기 마련입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태어난 쥐세페 타르티니도 그런 사람이었죠.
그는 바이올린 연주에 대한 많은 논문과 연구를 남겼고,
새로운 운궁법을 확립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트릴의 대가였죠.
발음도 어려운 이 기술의 사전적 의미는 악보의 기본음과 조성 내의 2도 위 보조음을 단시간에 반복하는 주법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기본음을 짚은 손가락 옆 손가락을 빠르게 떼었다 붙였다 하는 연주법인거죠.
그런 타르티니를 보고 사람들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타르티니의 왼손은 육손이다!” 라고들 했습니다. 이건 얼핏 그를 모욕하는 말같이 들리지만, 사실 엄연한 극찬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새로운 곡을 들고 사람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악마가 자신에게 준 곡을 들고 왔다면서 말이죠.
'어느 날 밤이었다. 잠들어 있던 나는 문득 눈을 떴는데. 근데 웬 남자가 내 곁에 서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걸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났는데, 나를 본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너가 타르티니인가?’
타르티니는 본 그의 모습은,
머리 위로 높게 솟아 둥글게 말린 뿔과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는 등 뒤의 박쥐날개,
피로 물든 듯한 붉은 피부와 짙고 검은 눈동자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것들과 상반되게 너무나도 하얀 이에서 나오는 미소.
그는 평생 악마를 본 적도 없고 믿은 적도 없지만,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악마라는걸 말이죠.
‘나...나에게 무슨 용건이요…?’
타르티니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긴장한 그와 상반되게 너무나도 여유롭고 미끄러지는 듯한 목소리로 돌아온 말은,
딱 악마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었죠.
‘너에게 한 가지 거래를 제안하고 싶은데, 어때?’
악마는 타르티니가 새로운 곡을 쓰는데 고민하던걸 알고 있었습니다.
마침 타르티니도 바이올린에 있어서는 아무와도 비견될 수 없는 묘기를 익히고 싶었죠.
그래서 그걸 증명할 수 있음과 동시에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곡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욕심이 악마에게 까지 닿아 버린거였을까요?
타르티니도 머리 속으로는 악마와 상종하면 안된다는걸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래 뵈도 그도 대학에서 신학을 배운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는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악마는 어떻게 바이올린을 연주할까…?
어떤 음색을 내고 어떤 기교를 부릴까?!
그 궁금증을 너무나 참을 수 없었던겁니다.
그렇게 타르티니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악마의 손을 잡았습니다.
영혼을 내어 준 뒤 기대 반 걱정 반에 가득찬 요상한 감정을 품으며 바이올린을 건내주었죠.
근데 이럴수가!
악마가 들려준 음색은 예상과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악마의 노래라고 하면 파괴적이고 음울할 것만 같았는데,
그 예상을 비웃 듯 악마가 낸 소리는 너무나도 황홀했던거죠.
게다가 아름다운 선율에는 신들린 듯한 기교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음색에 타르티니는 매료되었고, 어느 새 저절로 눈이 떠졌죠.
잠에서 깬 타르티니는 늦은 밤이었지만, 누워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꿈 속에서 들었던 선율이 머리 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기억 나는대로 악보에 악상을 옮겨 적기 시작했죠.
하지만 정말 하지만 애석하게도,
타르티니는 꿈 속에서 들었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교와 음색이어서 기억 못하는 걸지도 모르죠.
그 곡은 타르티니가 평생 듣도보고도 못 한 그런 바이올린 연주였을테니 말입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게 바로,
이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트릴’입니다.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도 꿈에서 들은 악상을 옮겨적은거니,
나름 같은 맥락의 조상님이라고 봐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악마와 만났다는 이야기의 진상은 둘째치더라도,
곡 자체가 매우 좋은 편인데요.
차분하면서 우울했지만, 파도가 치듯 밀려 들어오고,
다시 분위기가 바뀌면서 빠르고 격렬하게 긁어대는데...
현란하기 보다는 괴랄하다는게 이 곡에게 맞는 감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에피소드의 여부는 제쳐두고,
타르티니는 이 곡으로 모두에게 인정 받고,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그는 악마가 연주했던 곡을 그대로 살려낼 수 없다는 것에 계속 슬퍼했습니다.
그는 악마의 연주를 오선지 위에 완벽히 담아내려 했었지만,
막상 옮길 수 있던 건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거죠.
“비록 이 작품이 내가 작곡한 것 중 가장 뛰어나다 할지라도,
악마가 꿈 속에서 내게 들려준 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보잘 것 없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후회한들, 사람들의 반응은 찬사 뿐이었습니다.
하이페츠와 같이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를 길러낸 레오폴드 아우어도 이곡을 듣고 극찬할 정도였죠.
“이 작품이 정말 악마가 가르쳐 준 것이라면 그 악마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음악가였음이 틀림없다.”
라고 할 정도였으니, 당시에 얼마나 대단했는지 대충 감이 오시죠...?
그렇다면 현대에도 악마가 연주한 마성의 음색이 사람들을 홀리고 있을까요?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감상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악마가 연주한거 치고는 좀 약한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마가 만든 곡이라는 전형적인 이미지들,
바이올린으로 키는 헤비메탈같을거라든지,
아니면 정말 극한으로 우울하다든지,
혹은 무시무시하다든지 등의 인상을 기대했었거든요.
그런데, 이 노래의 첫 인상은 오히려 잔잔하고 어떻게 보면 섹시하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악마가 만들었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세월이 지날 수록 연주 기교라는건 계속 많은 발전을 해왔는데요.
악마의 피아노곡, 합주곡, 악보 등등 괴랄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며 의미는 점점 변해갔고,
전자 음악이 발전하며 다양한 소리도 가능해졌죠.
그 당시에는 이게 악마의 노래다! 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걸 악마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난이도로 격하된 것도 있구요.
그렇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판 타르티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정말 귀신같이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심지어77세까지 살며 그 당시로 치면 꽤나 장수한 편이죠.
이쯤되면 거의 곡을 유명하게 만들기 위한 바이럴마케팅이라고 봐야겠죠...?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게 있습니다.
타르티니가 꿈 속에서 들었던 원곡을 우리는 들을 수 없다는거죠.
그는 그저 악마의 연주를 듣고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그리고 기억해내는 선에서 곡을 옮겨 담은 것 뿐이었으니까요.
어쩌면 기보를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기에, 그의 영혼이 온전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이 곡은 사람을 점점 더 욕망에 빠지게 하는 악마의 함정일 수도 있죠
혹자는 이 곡을 듣고 나서 더 자극적이고 강렬한 기교를 듣지 못해서 안달이 났다면,
그것이야 말로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말했는데요.
그렇기에 계속 자극적인걸 갈망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고
악마는 우리에게 그 욕심을 담기 위해 이 노래를 타르티니에게 건내 준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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