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가 긴 일본 문화 속 캐릭터 하면 어떤게 떠오르시나요?
물론, 이 캐릭터가 생각나는게 당연하긴 한데요.
하지만 이 한 '코'하는 캐릭터가 등장하기 한참 전 부터,
일본 전설 속에서 뺄래야 뺄 수 없는
대표적인 요괴가 있습니다.
바로 텐구죠.
일본 요괴의 근본 그 자체인 이 텐구.
심지어 일본 덴노 계보와 역사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2세기에 벌어진 한 사건이 20세기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말이죠.
1119년에 태어난 스토쿠 덴노.
그는 왕가의 맏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커녕 증오를 받아온 인물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미가
시할아버지와 몰래 정을 통해서 낳은 사생아였거든요.
그럼에도 맏아들인 스토쿠는 덴노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불과 5살이라는 나이에 말이죠.
덴노라 하면 지금은 왕의 위치를 떠올리기 쉽지만,
당시에는 실권없이 허울만 좋은 자리였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황태자 자리와 다를 바 없었죠. 그
렇다 보니 실권은 다른 자들이 쥐고 있었고,
그의 인생은 답도 없이 꼬여만 갔습니다.
세월이 지나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
결국 스토쿠는 절에 유폐되고 마는데요.
그렇게 불교에 심취해 평안을 되찾으려 했던 스토쿠….
하지만 그가 흑화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으니.
그가 작성한 경전을 조정에 보냈는데,
거절을 당한 것입니다.
사유는 다름아닌 반역자가 올린 경전이 불쾌하다는 것.
이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스토쿠는,
분을 삭히지 못하고 자신의 혀를 씹어 잘라 경전 위에 저주를 써내리는데요
‘일본의 대마연이 되어,
황제를 잡아서 백성으로 하고,
백성을 황제로 만들리라!
이 경을 마귀의 세계에 회향하노라!’
스스로를 일본 대마왕으로 칭하는 그 순간.
짧았던 손톱과 머리카락이 자라나니,
야차와 같은 모습으로 변한 그는 바다 속으로 뛰어 듭니다.
여기서 끝나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요.
그대로 귀신, 아니 텐구로 거듭나버린 스토쿠.
그렇게 일본에 혼란을 가져오는 존재가 탄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독이 깃든 숨결로 마을에 역병을 퍼트리고,
귀족과 대신들이 병에 걸리게 하는 것은 기본.
시시가타니의 음모를 일으킨 장본인이자
헤이안쿄의 대화재를 낸 진짜 원인으로서,
스토쿠의 악명은 오랫동안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를 두려워 하지 않는 높으신 분들은
두려움에 휩싸인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해 스토쿠인이라는 톤쇼를 세웠으나,
세운 보람도 없이 병에 걸려 죽었다는 얘기도 유명하죠.
오랜 세월이 지나 메이지 유신 당시가 되어서도,
조정은 스토쿠를 두려워 했는데요.
왕가에 원한을 가진 스토쿠가
당시 위협이 되었던 막부에 힘을 실어 준다면
큰일이 났을테니까요.
그렇다 보니, 쇼와덴노는 1963년
한해 뒤에 있을 올림픽을 앞두고
스토쿠의 화를 삭히는데 큰 공을 들입니다.
어떻게든 원한을 가라 앉혀
성공적인 행사를 하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사후 800주년을 기념하는 제사에서는
큰불이 일어나고 천둥번개가 내리치며 비가 쏟아졌었거든요.
결국 가가와현 사카이데시에 있는 스토쿠인 능에
칙사를 보내서 식년제를 거행하고,
올림픽은 별 탈없이 마쳐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스토쿠 덴노라는 텐구에 대한 공포는
일본 문화와 사회 속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잠들어 있죠.
텐구라는 존재는 본래 중국에서 기원했었습니다.
이 쪽 동네에서는 일식이 진행되는 중
달을 삼키는 검은 개로 묘사하였으나,
일본에서는 하늘 천 한자를 뜻하는 텐은
하늘을 나는 새에게 적합하다 생각하였고,
특히 까마귀가 신의 전령으로 보여졌기에
우리가 아는 일본식 텐구로 점차 변하게 된거죠.
특히나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불교의 수호자에서 반 불교적인 파괴자로 그려지기 시작했는데요.
이 때 우리에게 익숙한 까마귀의 형상을 한 코텐구,
사제복과 큰 코가 특징인 다이텐구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또 다른 설로는,
일본에 온 서양인을 텐구라고 부른 경우인데요.
햇볕에 붉게 탄 얼굴과 큰 코,
그리고 당시 육식을 금지하던 일본인과 달리
동물을 잡아 먹는 다른 인종의 존재가
입소문을 타고 요괴로 불리운거죠.
일본 막부 정권의 개화를 요구했던
페리 제독을 그린 초상화를 보시면
이거 영락없는 텐구의 모습이죠…?
서브컬쳐 강국인 일본이다 보니,
이 천재지변과 전쟁을 일으키는 텐구를
판타지 요소를 극대화한 캐릭터로 활용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많은 요괴가 재생산이 이뤄지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일본 삼대악귀로 같이 꼽히는
슈텐도지, 백면금모, 오타케마루와 더불어
많은 루머를 갖고 있음에도
스토쿠 덴노는 서브컬쳐에서 등장이 없다시피 합니다.
그가 실존 인물인 것도 있지만,
존재 자체가 두려움과 불길함의 상징,
일본 대마왕이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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