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에, 이 세상에 없을 것만 같은 비정상적인 외모.
하지만, 인간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창백한 피부에,
공포를 자극하는 차가운 눈빛.
이게 누구냐구요? 바로, 일본의 요괴 ‘유키온나’입니다.
국내에서는 이를 한자음으로 읽어 ‘설녀’라고도 부르는데요.
이 요괴에 대한 전설은 시야를 가릴 정도로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눈보라와 함께 시작됩니다.
무사시의 시골 마을에는 모사쿠와 미노키치라는
나무꾼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모사쿠는 이미 늙었지만, 미노키치는 젊은 견습이었죠.
어느 겨울 날, 눈보라로 인해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두 사람은 인근 오두막에서
추위를 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얼굴에 불어오는 눈에 미노키치는 깨어났습니다.
그는 그의 옆에 자고 있던 모사쿠에게 숨을 불어넣는,
흰 옷을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게 되었죠.
모사쿠는 이미 말 그대로 차디찬 시신이 되어 있었습니다.
미노키치에게도 숨을 불어넣으려고 다가오는 그녀.
하지만, 잠시 바라보더니 그를 살려보내주었습니다.
미노키치가 젊고 아름다운 이케맨이었기 때문이죠.
나무꾼 생활을 했으니 몸도 좋았겠죠?
역시 사람은 잘생기고 예쁘고 봐야되는겁니다.
어쨌든, 그녀는 절대 이 일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이야기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 말한다면 죽이겠다고
경고를 덧붙이며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몇 년 후, 미노키치는 오유키라고 불리는
눈처럼 하얗고 날씬한 미녀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아이를 무려 10명이나 낳게 되었죠.
그런데 이상하게, 오유키는 10명의 아이를
출산한 어머니가 되었음에도,
전혀 늙지 않고 예전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갖고 있던 것입니다.
이걸 아이를 10명이나 낳은 다음에야 깨닫다니….
젊고 잘생기고 몸도 좋은 미노키치 였지만
아쉽게도 눈치는 없었던거죠.
그는 아이들이 잠든 어느 날 밤, 오유키에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널 보고 있으면,
열여덟살쯤 있었던 신기한 사건이 생각나.
그 날, 너와 똑같은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었지.
무서운 일이었지만,
그때 그건 꿈이었는지….
아니면 유키온나였는지….”
미노키치의 말을 듣고 오유키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외쳤습니다.
너가 그 때 만난 유키온나는 바로 자기 자신이며,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달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아이들을 슬프게 하는 일이 있다면
그때야말로 너를 죽이러 다시 찾아오겠다 경고했죠.
그 말을 마치자 오유키의 몸은 녹아 내리고
하얀 안개가 되어 사라졌습니다.
그 후, 오유키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이 이야기는 아일랜드계 영국 출신으로 일본에 귀화한 소설가,
라프카디오 헌의 작품, <괴담>에 수록되었습니다.
그는 이 이야기를 무사시에 사는
한 주민에게 들었다며 언급했는데요.
그의 작품 외에도 ‘유키온나’라는 요괴에 대해서는
일본의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전승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야마가타현의 카미야마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요.
눈보라가 치는 어느 날 밤,
한 노부부를 아름다운 여자가 찾아옵니다.
노부부는 그녀가 걱정된 나머지
하룻밤을 지내고 나가라며 말리지만,
그녀는 계속 다시 나가겠다고 반복하죠.
그런 그녀를 노부부가 손으로 잡으니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만큼 차가웠고,
그런 사이 눈보라가 되어 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오모리현의 히로사키에서는 유키온나로는 끝나지 않고,
유키온나의 딸인 ‘유킨코’가 나오는 전승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눈보라가 치는 날,
한 사무라이에게 유키온나가 나타나서 자신의 아기를 안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단도를 입에 물고,
날이 있는 쪽을 아이의 얼굴에 향하게 하죠.
그런데, 이 아기를 안고 있으면
점점 무거워지고 커진다고 합니다.
참다참다 더 이상 못참게 되어 유키온나를 보게 되면,
그녀는 아기를 안아준 답례라면서 보물을 주었다고 하죠.
여기에 추가로, 점점 커지는 유킨코의 무게를
견뎌낸 사람은 초인적인 힘을 얻게 된다고 하네요.
니가타현 오지야에서는 아름다운 여자가 찾아와서
스스로 아내가 되었는데,
이 여자는 희한하게도 목욕하기를 싫어해서 억지로 시켰더니,
그 자리에는 고드름만이 남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쪽은 ‘유키온나’의 또 다른 바리에이션인 ‘츠라라온나’, 한국어로 하면 ‘고드름 여자’이죠.
이외에도 각지에서 정말 다양한 전승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이 나지만,
간혹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죠.
유키온나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야마가타현 오구니 지방에서는 달세계의 공주라고 이야기 하며,
에도시대의 작가, 야마오카 겐린은
눈에서 태어난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는 니가타현의 에치고에서 전해지는 유래와 동일하죠.
기본적으로 미인이라는 설정의 요괴인 만큼,
정말, 정말 많은 작품들에서 이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셀수도 없을 정도죠.
이제는 한물 지나갔지만 대표적인
일본소년만화 3대장으로 손꼽혔던 원-나-블 중,
원피스와 블리치,
이 두 작품에서 설녀 설정이 사용된 캐릭터가
등장했었다는걸 생각해보시면…
대충 감이 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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